[미디어오늘] 성별 ‘고정관념 강화’ 미디어, 어린이에게 더 위험
페이지 정보
작성자 포천센터 작성일23-06-20 10:22 조회1,489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 기자명 윤유경 기자
서울YWCA ‘2022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보고서’
‘리본 좋아하는 공주풍 소녀’ ‘공룡처럼 용감하고 싶은 소년’
어린이 프로부터 예능, 광고에서 재현하는 성별 고정관념▲ '뽀로로노래, 사마귀 공주님' 유튜브 영상 갈무리.KBS 어린이 프로그램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홈페이지 상의 송이(여아) 캐릭터 소개는 이렇다. ‘성격: 차분함, 새침함’, ‘특징 : 모험을 싫어하고, 어른들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함. 레이스와 리본을 좋아하는 공주풍 소녀. 친구들 앞에서 우아하게, 도도하게, 새침하게 정말 공주인마냥 굴지만 사실 송이는 내심 쾌활한 콩순이가 부럽다.’
밤이(남아) 캐릭터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성격 : 밝고 씩씩함, 솔직함’, ‘특징 : 공룡을 좋아함. 먹는 것,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가끔 너무나 솔직한 발언으로 친구들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그건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수해서 나온 말이라 친구들도 미워하지 않는다. 커다란 공룡처럼 용감해지고 싶지만 아직은 무서운 것이 많다.’
▲ KBS 어린이 프로그램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홈페이지 상의 송이(여아) 캐릭터 소개.
▲ KBS 어린이 프로그램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홈페이지 상의 밤이(남아) 캐릭터 소개.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내용이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면 성인들이 보는 프로그램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아동기에 성차별적 메시지가 담긴 콘텐츠에 노출될 경우 왜곡된 젠더 인식을 형성하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유튜브 어린이 영상 콘텐츠와 어린이 이용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YWCA가 지난 2월 공개한 ‘2022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보고서’에는 지난해 지상파·종합편성채널·케이블에서 방영된 예능·오락 프로그램과 광고, 유튜브 어린이 프로그램 등이 양성평등을 재현하고 있는 방식, 성차별적 콘텐츠 사례와 문제점 분석이 담겼다.
2020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만 3~9세 어린이 78.7%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고, 이 중에서도 유튜브를 가장 많이(94.8%) 이용하고 있었다. 본래 지상파에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이 유튜브에 그대로 송출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이 프로그램에서의 젠더 고정관념은 성별에 따라 특정 장난감을 선호하는 것을 강조하거나 남자 캐릭터가 위험에 빠진 여자 캐릭터를 구하는 구도, 외향적 특성을 사용한 성별 표현 등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었다.
미디어가 재현하는 성별 고정관념
보고서에 따르면, 유튜브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성차별적 사례 39건 중 33건이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사례였다.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영상에서 보물 상자를 발견한 여성 캐릭터(송이)는 “예쁜 인형이랑 반짝반짝한 보석이 가득할 것 같아”라고 말하고 남성 캐릭터(밤이)는 “그게 무슨 보물이야! 아마 멋진 공룡 장남감이 가득할 거야”라고 말한다.
▲ KBS 어린이 프로그램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장면 갈무리.
<꼬마자동차구조대> 영상에서도 남성 캐릭터인 경찰차(폴)는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지시하며 또 다른 남성 캐릭터인 소방차(루이)는 힘과 도구를 써 문제를 해결한다. 반면 여성 캐릭터인 구급차(포미)는 놀란 어미곰을 달래거나 다친 아이들을 치료하며 보살피는 역할로 등장한다. 남성은 리더십 있고 힘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들은 누군가를 보살피고 치료하는 역할로 그려지고 있다.
▲ '꼬마 자동차 구조대'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보고서는 “성에 대한 인식을 형성해가는 시기의 어린이들이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해독 능력을 갖추기 전에 미디어에 담긴 전통적 성별 고정관념을 학습하고 있다”며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성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미디어가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다수 애니메이션에서 여성 캐릭터는 속눈썹이나 리본, 화관 등 장신구로 표현됐다. 여성은 분홍색, 남성은 파란색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여전했다. 여성 아동 캐릭터가 잡지를 보고 피부 관리나 화장을 하는 장면들을 비롯해, “이렇게 예쁜데 사진 안 찍어줘?”, “나처럼 귀엽고 깜찍한 애를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야?”라고 묻는 대사가 등장하는 등(애니메이션 <마샤와 곰>) 외모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도 발견됐다.
▲ '마샤와 곰' 유튜브 영상 갈무리.
<안녕 자두야>에서는 ‘미녀 도우미’라는 명목으로 여성 아동 캐릭터가 토끼 머리띠, 경찰 제복 등을 입고 있는 장면도 있었다. 보고서는 “여성 가치를 외모에 두고 볼거리로 제시하거나 보조적 존재로 드러내는 소재는 어린이 시청자에게 외모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줄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하며 동일시하게 되는 미디어 창작물 특성상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며 “성인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채널보다 어린이들을 주 시청자로 삼는 유튜브 채널의 성차별 사례에 더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 '안녕 자두야' 유튜브 영상 갈무리.
유튜브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은 새롭게 제작된 것도 있지만 본래 지상파에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이 그대로 송출되는 경우도 많다. 기존 애니메이션의 젠더 고정관념이 개선되지 않은 채 유튜브 채널에서 그대로 방영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미디어 영향력이 점점 증가하는 만큼 애니메이션의 뒤떨어진 젠더 감수성이 어린이들에게 왜곡된 성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제작자들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성차별적 요소들이 포함된 영상을 삭제 혹은 편집하는 것과 더불어 성평등한 콘텐츠들을 적극적으로 제작함으로써 미디어 환경을 변화시켜 나가는 책임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능, 광고 등 성별 고정관념 재생산하는 미디어
예능 프로그램에서 성별 고정관념은 출연자 발언과 자막에서 두드러졌다. ‘엄마’, ‘여성’ 역할을 육아와 가사에, ‘아빠’, ‘남성’은 경제 활동이나 강인한 체력 등을 강조하는 식이다.
KBS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는 남성 출연자가 집에서 아침밥을 차리고 친구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패널들이 일제히 “엄마 같아”, “우리 엄마도 이렇게 안 해 주는데”라며 출연자를 칭찬하는 장면이 나왔다. MBC <전지적 참견시점>에서는 여성 출연자가 매니저를 챙기는 모습을 ‘엄마와 아들’에 빗대어 표현하는 자막이 회차 전반에 등장했다. 보고서는 “엄마와 가사 노동, 돌봄, 챙김이라는 표현을 연결 지으며 여성이 돌봄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성역할을 부여하고 고정관념을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0대에 부모가 된 일반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MBN <고딩엄빠2>에서는 남성 출연자가 “나와 아내가 같이 일해서 모아 전세금을 냈다”고 말했는데, 화면에는 아파트 사진과 함께 “남편의 피땀 눈물의 결정체”라는 자막이 달렸다. 또 남성 출연자에게는 “성실한 남편에게 지워진 가장의 무게”라는 자막을 사용한 반면, 여성 출연자에게는 “지독한 독박육아로 불만 쌓이는”이라는 자막을 적었다.
보고서는 “여성의 임금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집안에서의 가사 노동은 부부가 함께 맡아야 하는 삶의 필수 노동인데도 가사를 혼자 전담하는 것에 대한 여성의 문제 제기는 ‘불만’으로, 남성이 가사 노동을 해 버는 돈은 ‘피, 땀, 눈물’로 강조하는 프레임은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광고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육아, 돌봄, 가사 주체로, 남성은 경제 활동을 하고 상품을 소비하는 역할로 등장했다. 대부분 전통적 가족 모습을 이상적 모습인 것처럼 등장시키는 광고가 많았는데 가정에서 고정관념에 따라 구분된 성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이 나타나거나 ‘수동적 여성성’, ‘능동적 남성성’을 강조하는 사례들이 확인됐다.
신혼부부 모습을 담은 모니터 광고는 수다스럽고 애교가 많은 여성과 그 모습을 귀여워하는 남성을 등장시켰다. 여성은 가구 배치 등 집 인테리어가 주 관심사로 회사에서 업무 중인 남성에게 수시로 메시지를 보내고 여성은 감정적, 남성은 이성적 모습으로 그려졌다.
▲ '삼성전자 스마트 모니터 M8 우리들의 M8TI 이야기-S와 N의 기묘한 신혼기 편' 유튜브 광고화면 갈무리.
음식물 처리기 광고에서도 장을 보고 귀가한 여성이 남성을 위해 많은 양의 요리를 하고, 주방에 선 채 식사하는 남성을 뿌듯하게 바라본다. 남성은 음식이 맛있다고 반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내레이션은 그 모습을 인간이 구성원으로 성장해가는 “사회성”이라고 설명한다. 보고서는 “전통적 성역할이 등장하고, 이런 성역할이 지속되도록 하는 남성의 행동을 ‘사회성’으로 이름 붙이며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 '파이널키친 시리즈 3-그 남자 그 여자 편' 유튜브 광고 영상 갈무리.
보고서는 “광고 상품이 있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개인은 어떤 광고를 볼 것인지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콘텐츠 제작자 역시 해당 콘텐츠에 붙을 광고를 선택하기 어렵다”며 “성차별적 광고, 남성 중심 광고에 노출되는 경험이 거듭될수록 대중들은 이에 동화돼 ‘성차별은 사회적 권력에 의해 승인되는 것이므로 나도 성차별 해도 된다’라는 당위를 만들어내고, 그런 생각을 쉽게 외부로 표현할 동력을 얻으며 그런 개인들끼리 더 쉽게 응집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