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팩트체크] 하차부터 결석 확인까지…무용지물 된 어린이집 매뉴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포천센터 작성일18-07-19 18:07 조회2,80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지난 17일 동두천에서 4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어린이집 차량에 방치된 채 숨진 사고는 관련법과 어린이집 운영 지침만 지켜졌어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
어린이집 차량과 관련된 사고가 최근 몇 년간 되풀이되면서 정부가 관련 규정을 잇따라 강화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탓이다.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점도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된다.
◇ 허울뿐인 통학차량 안전 매뉴얼
당국은 지난 2013년 청주에서 통학차량에 치여 숨진 김세림(당시 3세) 양의 사례를 계기로 통학차량 안전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2016년에는 광주에서 유치원생이 통학버스에 8시간 방치돼 의식불명에 빠진 사고가 발생하자 도로교통법을 또다시 개정하고, 어린이집에 내려보내는 보육사업안내(어린이집 운영 지침) 중 차량안전관리에 관한 부분도 강화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 제53조에 따르면 어린이 통학버스에는 아이들의 승하차를 관리하는 보육교사가 함께 타야 하며, 운전자는 운행을 마친 뒤 어린이가 모두 하차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2016년 개정된 어린이집 운영 지침의 운전자·동승 보호자 매뉴얼에도 하차 시 차량에 남아있는 아동이 없는지 맨 뒷좌석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지침은 통학차량 이용 아동의 출결 확인 의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통학차량에 탄 보육교사는 어린이집에 도착해 아이들을 하차시킨 뒤 차량 이용 아동들의 승하차 상황을 확인해 담임교사에게 통보해야 한다.
담임교사는 통학차량 이용 아동 중 무단결석 아동이 있으면 보호자에게 전화, 문자, 메신저 등으로 아이의 소재를 확인하고, 확인되지 않을 경우 통학차량에 아동이 남아있는지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운전자는 출결 상황 확인이 끝날 때까지 통학차량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지 않고 차량에서 대기하도록 돼 있다.
이런 규정과 지침대로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아야 했지만, 이번 사고가 일어난 동두천 어린이집의 운전자와 동승 보육교사, 담임교사 누구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실제로 어린이집에서 무단결석 아동에 대한 부모 확인 절차는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어린이집은 유치원이나 학교와 달리 아이들의 등원 시각이 제각각인 데다 연락 없이 결석하는 아이들도 많다"며 "많은 아이가 등원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오전에는 부모에게 일일이 연락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오후 낮잠시간 대에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느슨한 제재·처벌…되풀이되는 사고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 수위가 낮아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운전자가 운행을 마친 뒤 모든 아이가 하차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도로교통법 규정을 어긴 경우 범칙금 12만원과 벌점 30점이 부과될 뿐이다.
통학차량 이용 아동의 출결 여부 확인 등에 관한 지침을 어긴 경우에는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을 뿐 별다른 처벌이나 과태료에 관한 규정은 없다.
법규와 지침 위반이 이번처럼 사고로 이어진 경우 책임이 있는 보육교사나 운전자 등은 업무상 과실치사 혹은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다. 어린이집은 사고를 일으킨 행위가 아동학대 범죄 처벌 특례법상 유기·방임에 해당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시설 폐쇄 등의 행정처분도 받을 수 있다.
지난 2016년 원생을 통학버스에 방치해 의식불명에 빠뜨린 광주지역 유치원의 인솔교사와 버스 기사, 주임 교사 등은 과실치상죄가 적용돼 각각 금고 5~8개월을 선고받았다.
원장 A씨의 경우 그해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폐쇄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 지난 8일 2심에서 폐쇄명령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유치원을 폐쇄해 원생들에 대한 건전하고 정상적인 교육을 실현하고 교육복지를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공익적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없다"며 "A 씨는 유치원 폐쇄로 큰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고 원생과 학부모가 전학 등으로 겪는 정서·경제적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로 해당 유치원은 정상 운영되고 있지만, 사고를 당한 원생은 아직도 의식불명 상태다.
최근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제안도 나오고 있다.
통학차량 맨 뒷자리에 버튼을 설치해 운전자가 시동을 끄기 전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하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제', 동작감지 센서, 어린이가 승하차 시 지문이나 카드로 단말기에 등록해 3G망으로 교사와 부모가 관리하는 방식 등이 있다.
보건복지부 김우중 보육기반과장은 "사례나 동영상을 중심으로 운전기사와 보육교사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제시되는 여러 대안의 장단점을 검토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hisunny@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7/19 17:4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