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디지털스토리] "임신중인데 영수증 만지면 안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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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천센터 작성일19-02-09 14:06 조회3,0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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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페놀A, 암·비만 유발 우려…일각선 "유해하지 않다" 주장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대학생 때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기록을 영수증으로 남겼어요. 여행을 가면 그때마다 기차 티켓, 기념품에서 구매한 영수증 등을 공책에 붙이고 옆에 글씨를 써서 기록했는데 이제는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임신 7개월 차에 접어든 김 모(33) 씨는 지난달 제주도 여행 중 발생한 영수증을 받지 않고 전부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김 씨는 "평상시에 자각이 없었는데 임신하다 보니 화학물질에 대해 두려움이 커졌다"며 "주변에서 영수증을 만지면 환경호르몬이 몸에 흡수된다고 해서 조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씨처럼 영수증을 모으는 습관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수증에 들어있는 '비스페놀A'(BPA·Bisphenol A) 때문이다. 비스페놀은 플라스틱 제품을 제조할 때 들어가는 물질로 대표적인 내분비계교란물질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영유아의 비스페놀A의 소변 중 농도가 성인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호르몬 물질들을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 "비스페놀A, 단순 접촉만으로 인체 침투"
"계산할 때 불편하고 답답해서 따로 장갑을 끼진 않아요."
지난 27일 한 대형서점에서 만난 직원 이 모(27) 씨는 책을 계산하고 발생한 영수증을 구겨 계산대 뒤편에 마련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씨는 "영수증을 버려달라는 고객 요청이 많다"며 "세어보진 않았지만, 하루에 수십회 이상 영수증을 만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이런 행동은 체내에 환경호르몬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팀은 영수증을 맨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비스페놀A의 체내 농도가 2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마트에서 일한 지 평균 11년 된 중년 여성 계산원 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반면 장갑을 끼고 일했을 때의 비스페놀A 농도는 업무 전후 큰 차이가 없었다.
현재 체중 60㎏인 성인의 비스페놀A 하루 섭취 허용량은 3㎎ 정도다.
영수증 용지는 감열지다. 종이에 열을 가하면 그 지점에 색깔이 나타나는 방식을 이용해 글자를 새기는 종이다. 비스페놀A 감열지의 발색 촉매제로 사용되는데 감열지 표면에 코팅된 화학물질이다. 단순 접촉만으로도 피부를 통해 인체로 침투한다.
영수증 한장에 들어있는 비스페놀A 양은 적지 않다. 미국 환경 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에 따르면, 영수증 한장에 들어있는 비스페놀A의 양은 캔 음료나 젖병에서 나오는 양보다 수백 배 많다. 영수증뿐만 아니라 기차 티켓, 은행 순번 대기표 등 일상에서 늘 접하는 종이에도 비스페놀A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다.
캔, 통조림, 물통 등에도 사용된다. 비스페놀A는 폴리카보네이트와 에폭시수지의 주원료다.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는 투명하고 단단한 플라스틱 또는 유광의 매끈한 플라스틱을 말한다. 내열성이 강해 과거 젖병과 식품 용기에 쓰였다. 에폭시수지는 통조림 캔, 일부 알루미늄 물병 내부 코팅제로도 사용된다.
◇ 비스페놀A 유해성 우려도 커져
비스페놀A가 적용되는 제품들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일상 곳곳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26일 발표한 '제3기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 결과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천167명의 혈액과 소변을 채취해 26종의 환경 유해물질 농도를 분석한 결과 비스페놀A의 소변 중 농도가 영유아가 2.41㎍/L로 성인(1.18㎍/L)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영유아 중 상위 5%의 농도는 10.6㎍/L나 됐다. 초등학생은 평균 1.70㎍/L, 중고생은 1.39㎍/L로 조사됐다.
해당 성분 농도는 국제 권고치보다는 낮지만 주로 바닥에서 놀고 물건을 입에 잘 무는 영유아가 환경호르몬에 더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환경호르몬이 아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8월 영유아 식품을 담는 용기에는 비스페놀A 사용을 금지했다.
비스페놀A가 유해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인체에 들어간 비스페놀A 대부분은 소변 등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부터 저농도 비스페놀A 위해성에 대한 불확실성 검토 등 안전성 재평가에 들어간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사람들이 비스페놀A에 노출됐더라도 그 양이 매우 적어 건강과 관련이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비스페놀A의 위해성이 2000년 이후 집중 조명되면서 소비자들의 우려가 크게 고조됐다. 수백 건에 달하는 보고서들은 비스페놀A가 내분비교란물질을 포함, 유방암 및 뇌종양, 비만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고 밝혔다. 특히 유아와 임산부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 환경보건센터 홍윤철 센터장과 임연희 교수 연구팀이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엄마의 임신 중 비스페놀A 노출량이 2배가 되면 여아의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는 58.4%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2011년 사이 304명의 임산부를 모집해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동을 4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다.
임산부 역시 생활 속 화학물질 제품 노출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 "태어날 때부터 죽을때까지 환경호르몬 노출"
전 세계적으로 비스페놀A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9월 플라스틱 식품 용기 내 비스페놀A 함유량을 제한하는 규정을 채택했다. 최대 허용량을 기존의 10분의 1 이하(0.6mg/kg → 0.05mg/kg)로 줄이고, 3세 이하 영유아용 플라스틱 물병과 컵에는 사용을 금지했다.
프랑스의 경우 2015년 1월 1일부로 모든 식품 용기 내 비스페놀A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의 경우 영유아용 식품 용기 내 비스페놀A를 쓰지 않고 있다. 젖병에 대한 비스페놀A 사용금지도 활발하다. 우리나라를 포함 캐나다, 프랑스, EU, 미국 등이 이에 해당한다.
환경호르몬은 국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체 내 환경호르몬 대사체 농도를 비교한 결과, 한국의 경우 비스페놀A의 요중 농도는 제1기(2009~2011년)보다 제2기(2012~2014년)에 들어 0.2㎍/L 증가했다. 이는 캔 음식 등 용기 식품의 섭취빈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국회입법조사처는 추정했다.
계명찬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우리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환경호르몬에 노출된다"며 "영수증을 덜 만지고 딱딱한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플라스틱 물컵을 피하며 통조림 음식 등을 지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영수증을 없애는 게 바람직하다"며 "정부도 화학물질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시민들도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환경호르몬 물질들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junepe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2/29 08: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