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인터뷰] 이기철 유니세프한국위 사무총장 "아동 인권은 보편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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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천센터 작성일19-11-19 11:53 조회2,8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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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후원금 헛되이 쓸 수 없어…개도국 발전해야 수출시장 확대"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59년 11월 20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 대표들은 만장일치로 유엔아동권리선언을 채택했다. 인종이나 국적 등에 상관없이 전 세계 모든 어린이가 보호와 교육을 받고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로부터 30년 뒤 같은 날 유엔 회원국 대표들은 아동의 생명권, 의사표시권, 고문 및 형벌 금지, 불법 해외 이송 및 성적 학대 금지 등을 담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유엔은 이날을 세계어린이날로 선포했다.
'차별 없는 구호'를 내걸고 1946년 12월 11일 창립된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해 기금을 모으는 한편, 아동 권리 옹호에 앞장서며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산파역으로 활약했다.
유엔아동권리선언 선포 60주년이자 유엔아동권리협약 채택 30주년 기념일을 5일 앞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이기철(62) 사무총장을 만나 아동권리협약의 의미를 물었다. 이 총장은 이에 대해 "유엔 회원국 193개국보다 많은 196개국이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것은 아동 인권이 인류 보편적 가치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니세프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아동의 권리 증진 역할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기관이며, 유니세프한국위는 선진국 33개국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국가위원회로 꼽힌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법학과와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행정학과를 졸업한 이기철 사무총장은 1985년 외무고시(19회)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주영대사관·주리비아대사관·유엔대표부·주이스라엘대사관·주오스트리아대사관을 거쳐 외교부 조약국장·국제볍률국장·장관 특별보좌관·재외동포영사대사, 주네덜란드 대사, 주LA 총영사 등을 역임했고 지난해 5월 1일 유니세프한국위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 아동권리선언과 아동권리협약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
▲ 아동권리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적 의미를 지니지만 국제법인 아동권리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각국의 지침서 구실을 한다.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하고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각국은 이를 토대로 관련 법을 만들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한국은 1991년 11월 20일 비준해 이행당사국이 됐다. 국제협약 가운데 가장 많은 196개국이 가입한 것은 아동 문제에 관해서는 나라마다 이견이 없다는 뜻이다. 동양으로 치면 이제 이립(而立)의 나이가 됐고 서양식으로 따지면 한 세대가 지났다. 올해가 중요한 해다.
--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
▲ 아동권리협약 채택 후 30년간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은 50% 이상, 영양실조 아동의 비율은 절반가량 줄었다. 안전한 식수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도 26억 명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전 세계 9명 가운데 한 명꼴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신생아 7명 중 한 명은 저체중으로 태어난다.
-- 유니세프가 활동하는 나라는 얼마나 되나.
▲ 유니세프는 창립 이래 인종이나 종교나 국적 등에 상관없이 전 세계의 어려운 어린이를 도왔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1965년 노벨 평화상의 영예를 안았다. 개발도상국 150개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고 33개국에 국가위원회가 있다. 유니세프한국위는 1994년 출범,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 유니세프 본부는 유니세프한국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 한국위 설립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8월 27일 방한한 헨리에타 포어 유니세프 총재는 "한국은 유니세프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라고 말했다. 한국은 세 가지 기록을 세웠다. 도움받던 나라에서 유일하게 도움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고,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기부금을 미국 뉴욕의 유니세프 본부에 보내고 있으며, 전체 모금액 중 본부 송금률이 84.6%로 1위다. 한국가이드스타의 공익법인 재무 안정성·효율성·투명성 종합평가에서도 만점을 받았다. 2018년 1천347억여 원을 모금해 1천146억여 원을 본부에 보냈고 아동 권리 옹호와 PR 등 국내 사업비에 10.2%, 인건비 2.6%, 관리운영비 2.2%를 썼다.
-- 어린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 2015년부터 아동친화도시 인증사업을 벌이고 있다. 10가지 요건을 평가해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 마련돼야 출산율도 높아진다. 프랑스에서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제 도입 후 합계 출산율이 1.9%에서 2.0%로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39개 시군구가 인증을 받았고 49개가 심사 중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미세먼지를 줄이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지난 3월 마틸드 벨기에 왕비와 8월 포어 유니세프 총재가 유니세프한국위를 방문했을 때 극단 '날으는 자동차'의 어린이 뮤지컬 '마루의 파란 하늘'을 함께 관람하고 출연진과 대화를 나눴다.
-- 유니세프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 73년간 쌓은 전문성과 국제 네트워크, 유엔 산하기관이라는 신뢰성 등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미 현장에 있기 때문에 긴급구호에 나설 수 있고 사후관리도 가능하다. 효율성도 높아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어린이를 구할 수 있다. 지난해 북한에도 유니세프 본부를 통해 33억여 원어치의 산모·유아용 백신 등을 지원했다. 북한 당국도 유니세프에는 현장 접근을 허용해 철저한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다.
--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빈곤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한 국민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원조금이 새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개도국을 지원할 때 교육에 역점을 둔다. 2010년 박양숙 여사가 기부한 100억 원으로 '스쿨 포 아시아'(Schools for Asia)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아시아 11개국에 학교를 짓고 교사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도 못사는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을 도와주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 주네덜란드 대사로 근무할 때 현지 관계자들에게 '우리나라는 네덜란드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가난을 극복했고 이제는 네덜란드에 4만 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득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지리 교과서에 한국의 발전상을 싣는 데 성공했다. 개도국이 발전해야 우리의 수출시장도 넓어진다. 난민이나 미세먼지 등에서 보듯이 아동 문제는 초국적 이슈다. 지구촌이 다 함께 잘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 국제구호기구에서 일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 외교관 시절에는 해외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인을 위해 일했으니 퇴직 후에는 반대로 국내 거주 외국인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유니세프한국위 사무총장 공모 소식을 듣고 평소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 응모했다. 나도 초등학교 다닐 때 유니세프가 주는 빵을 먹은 기억이 있다.
-- 외교관 시절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 그때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았다면 지금은 후원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금으로 급여를 받고 있다. 공무원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정상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원은 7시간 이상 비행기를 탈 때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지만 나는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에 탄다. 실직 기간에도 매달 3만 원의 기부금을 꼬박꼬박 내왔다는 후원자의 이메일을 보고 소중한 돈을 허투루 쓰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곳 직원들이 후원금을 철저하게 아껴 쓰는 모습을 보고도 감동했다.
-- 남은 임기에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면 자연히 후원금 규모도 늘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 조직문화를 한층 개선하는 데 힘쓰겠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1/18 09:23 송고